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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를 잡으려면 시스템을 잡자
2026-02-26

BTS 부산 콘서트를 보러 온 일본인 관광객이 숙소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평소 6만 8천원인 방이 76만 9천원이 되어 있었다.

11배다(공정거래위원회 2026.2.13, 부산 135개 숙소 실태조사)

종로의 한 모텔은 14만원짜리 방을 50만원에 팔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다른 선택지를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접수된 관광불편신고 213건 중 숙박 관련이 138건. 그중 외국인 신고가 157건으로 전체의 74%를 차지했다(관광불편 신고센터).

정부가 움직였다. 2026년 2월 2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바가지요금 근절대책'이 발표됐다.

우리나라가 관광강국으로 성장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사람 입장에서 정부의 방향은 100% 동의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될까.

정책의 핵심

이번 대책의 골자를 정리하면 이렇다.

대책 내용
자율요금 사전신고제 숙박업소가 시기별 요금을 연 1회 사전 신고. "바가지 안심가격업소" 인증
제재 강화 1차 위반시 즉시 영업정지 5일 (현행: 경고·시정명령)
예약취소 제재 성수기 일방적 예약취소·위약금 부과에 대한 신고·처분 체계 신설
플랫폼 협력 OTA에 "안심가격업소" 표시, 후기 기능 강화, 정부-플랫폼 MOU

외국 사례도 참고했다.

프랑스는 최대 1.5만 유로(약 2,300만원), 독일은 최대 2.5만 유로(약 3,8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Anti-Price Gouging Law로 재난·비상시 가격 인상을 10% 이내로 제한한다.

문제 인식은 정확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바가지를 경험하면, 그 한 번이 한국 전체의 이미지가 된다.

그런데 18년간 이 업계에 있으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다.

단속과 제재만으로는 시장이 바뀌지 않는다.

현장에서 본 세 가지 질문

연 1회 신고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나

숙박 요금은 매일 바뀐다. 평일과 주말이 다르고, 비수기와 성수기가 다르고, 주변 행사 유무에 따라 또 다르다.

글로벌 호텔 업계에서는 수익 관리(Revenue Management)라는 이름으로 수요·공급에 따른 실시간 요금 조정이 상식이다.

연 1회 신고는 선의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365일 중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숙박업의 특성을 연 1회 신고로 담기는 어렵다.

"과도한" 기준이 없다

정부 문서 자체가 인정한다. "합리적 가격설정 기준이 부족하다"고.

성수기 인상률 가이드를 민간 자율에 맡긴다면,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가.

글로벌 호텔 업계에는 기준 정가(Rack Rate)라는 개념이 있다.

할인이나 프로모션 적용 전의 공식 정가다.

호텔의 '천장 가격'이라 보면 된다. 모든 할인은 이 기준에서 내려가는 것이고, 소비자는 기준 정가(Rack Rate)를 기준으로 지금 가격이 비싼지 싼지를 판단한다.

수요에 따라 가격이 오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항공권도 성수기에는 2~3배가 된다. 그것은 동적 가격 책정(Dynamic Pricing)이다.

문제는 기준 가격이 없는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 없이 10배를 올리는 것이다.

거기에 가격 담합이라도 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래도 기준 정가가 있고 이 가격을 소비자가 알 수 있다면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고 시장의 판단이다.

한국 숙박시장에는 이 기준 자체가 없다.

같은 방이 야놀자에서는 6만원, 여기어때에서는 5만원, 부킹닷컴에서는 7만원이다.

기준이 없으니 "얼마가 적정한가"를 판단할 근거도 없다.

글로벌 표준 vs 한국 현실

6만 개 업소를 누가 감시하나

전국 숙박업소 59,619개(로빈컴퍼니 '우리나라 숙박시장 2024').

이 업소들의 요금 변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인력이 있는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산 135개 숙소를 실태조사하는 데도 상당한 리소스가 들었다.

전국 단위로 확대하면 물리적 한계가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콘서트 주말 이틀에 500만원을 벌 수 있는 업주에게 영업정지 5일이 억지력이 될까.

산술적으로 따지면, 부당이득이 제재를 넘어선다.

프랑스(2,300만원)나 독일(3,800만원) 수준의 과징금이 아니면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다.

단속 말고 시스템

숙박 IT 서비스를 하는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써 기술 인프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18년간 이 업계에서 단속만으로 시장이 바뀌는 것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성을 갖고 의견을 전달하고 싶었다.

나는 이 문제의 본질이 "나쁜 업주를 잡는 것"이 아니라 "바가지를 씌울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격 투명성은 기술로 만든다

프랑스는 2016년부터 숙박업소가 건물 외부에 객실 정가를 게시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했다.

조식 포함 여부, 인터넷 제공 여부까지 명시해야 한다. 모든 가격은 세금 포함 최종 금액으로 표시한다.

여기서 핵심은 "게시" 그 자체가 아니다.

기준 가격이 공개되면, 그 가격을 넘어서는 것이 자동으로 눈에 띈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다만 건물 외벽이 아니라, 디지털 시스템으로.

숙박업소가 채널매니저(Channel Manager)나 숙소 관리 시스템(PMS)로 요금을 관리하면, 시기별 요금이 자동으로 기록된다.

수기로 연 1회 신고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요금 이력을 남긴다. 이상 변동이 감지되면 자동 알림이 간다.

6만 개 업소를 사람이 점검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가 점검한다.

글로벌 OTA의 자정 메커니즘

글로벌 OTA에는 한 가지 강력한 장치가 있다.

검증된 리뷰 시스템이다.

부킹닷컴에서 7만원짜리 방을 77만원에 팔면 어떻게 되는가.

리뷰가 즉시 반영된다. 별점이 떨어진다. 검색 알고리즘에서 밀려난다. 예약이 줄어든다. 시장이 알아서 벌을 준다.

국내 플랫폼과의 차이도 여기서 드러난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야놀자·여기어때에서 모텔 상위 노출 상품의 100%가 광고 상품이었다.

"추천순"이라고 써있지만 실제로는 광고비를 많이 낸 순서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응답 업체의 92.4%가 "노출 순서가 불합리하다"고 답했다.

글로벌 OTA도 유료 광고 상품이 있다. 완전히 공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 알고리즘에 리뷰 점수, 전환율, 가격 경쟁력 같은 품질 지표가 반영된다.

양질의 숙소가 상위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구조다.

광고비만으로 순위가 결정되는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가지를 씌우는 숙소는 이 시스템 안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정부가 일일이 단속하지 않아도.

프랑스가 OTA 생태계를 바꾼 방법

프랑스는 한 발 더 나갔다.

프랑스 마크롱법(Loi Macron, 2015)으로 OTA의 최저가 동등 조항(Price Parity)을 금지했다.

호텔이 자체 홈페이지에서 OTA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독일도 같은 조치를 시행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숙박업소가 자체 채널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플랫폼에 100% 종속되지 않으면, 가격 결정권이 업주에게 돌아간다.

플랫폼이 가격을 왜곡할 여지도 줄어든다.

한국도 이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플랫폼 종속에서 벗어나 업주가 자체 채널을 갖고, 글로벌 OTA에도 동시에 노출되는 구조. 그 안에서 가격 투명성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생태계.

AI 시대, 관광 인프라의 새로운 기준

프랑스는 법으로, 글로벌 OTA는 알고리즘으로 시장을 정화했다.

체감 속도는 각자 다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누구나 체감하는 AI 혁명이 일어나는 태풍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

그 파도를 맨몸으로 맞고 있는 사람 중 한명으로써 한 가지만 더 짚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전 세계 여행자의 행동이 바뀌고 있다.

ChatGPT에게 "서울에서 가성비 좋은 숙소 추천해줘"라고 묻는 시대다.

AI가 추천하는 숙소, AI가 신뢰하는 정보가 여행자의 선택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가까운 미래 아니 어쩌면 이미 다가온 현실을 준비하는 관광 인프라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AI는 구조화된 데이터를 읽는다.

가격 이력, 리뷰 점수, 시설 정보, 정부 인증 여부. 이런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으면 AI가 "이 숙소는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바가지 안심가격업소" 인증도 AI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되면, 전 세계 AI 서비스가 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관광강국이 되려면, 사람만 보는 인프라가 아니라 AI도 읽을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정부가 만드는 인증 체계, 플랫폼이 제공하는 가격 데이터, 업소가 관리하는 시설 정보가 하나의 디지털 생태계로 연결되는 것.

이것이 민과 관이 함께 만들어야 할 다음 단계다.

한국의 숙박 상품을 표준화하고 글로벌화 하는데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 온 회사들이 있다.

이런 현장의 역량과 정부의 정책 방향이 만나면, "바가지 없는 나라"는 구호가 아니라 시스템이 될 수 있다.

바가지를 못 씌우는 나라

정리해보자.

바가지요금 근절은 "나쁜 업주를 잡는 것"이 아니라 "바가지를 씌울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시스템은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기준 가격 체계 — Rack Rate처럼, 업소별 기준 가격이 공개되고 비교 가능한 구조
  2. 투명한 기술 기반 모니터링 — 6만 개 업소의 요금 변동을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로 감시하는 인프라
  3. 글로벌 수준의 자정 메커니즘 — 리뷰와 알고리즘이 양질의 업소를 보상하고, 바가지 업소를 도태시키는 생태계

18년간 이 업계에 있으면서, 물론 바가지를 씌우는 업주들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성실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업주들이셨다.

다수의 성실한 업주가 소수의 바가지 때문에 업계 전체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이 안타깝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그 관점에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기술 인프라가 더해지면, 한국은 전 세계 누구나 믿고 찾아오는 관광강국이 될 수 있다.

바가지를 "잡는" 나라가 아니라, 바가지를 "못 씌우는" 나라.

그것이 K-관광의 다음 단계가 아닐까?



오현석 | 온다 대표이사

Kevin Oh
(주)온다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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