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PECIAL : 아티스트가 머무는 공간 11

2019-06-07

11. 조형과 여백, 클레멘스 베어

Original Author 핀즐 진준화 대표(www.pinzle.net)

Adapter&Editor ONDA 소모라 매니저

먼슬리 아트웍 핀즐
웹사이트 :
www.pinzle.net

핀즐은 국내 유일의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로,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와 작품을 선정하여 세상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삶과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공간을 일구어 가는 많은 분들께 영감을 드리고자 본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연재하는 내용 및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관련 문의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핀즐’로 주시면 신속하게 응답하겠습니다.

 

Acores Marina Mauer Revisited

 

 

클레멘스 베어(Clemens Behr)는 그 누구보다도 과정에 집중하는 아티스트라 말할 수 있다. 1985년 독일 코블렌츠에서 태어난 그는 베를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접한 클레멘스는 작품의 재료나 설치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일까. 다소 무질서해 보이는 클레멘스의 작품들로부터 얻어지는 인상이란 난해함보다는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빛과 색으로 강조된 구석구석은 작품이 놓인 주변 환경에 활력을 더하는 것 같다. 3차원의 설치물이 주는 독특한 느낌처럼 클레멘스와 그의 삶 또한 색다르게 다가오게 될까? 작품을 접하며 떠올랐던 단상들은 직접 만나게 될 클레멘스를 자유분방할 뿐만 아니라 약간은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상상하게끔 했다.

 

그렇게 무질서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도 잠시, 작품을 볼수록 느껴지는 안정감은 섣부른 예단을 금세 중단시키고야 말았다. 곳곳을 가로지르는 직선들은 서로 다른 색과 형태들을 가만히 눌러 정돈하고 있는데, 이리저리 엉켜있는 오브제들이 사실은 아티스트만의 방식으로 재배열된 것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이에 더해 간단한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 즉 작품을 구성하는 오브제들은 모두 작품이 제작되는 도시와 그것이 놓이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묘하게 느껴지는 안정감을 설명해주는 단서가 된다. 그러고 보니 클레멘스의 홈페이지 또한 차분하고 꼼꼼하게 정리된 것 같다. 이쯤 되니, 어서 베를린으로 날아가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의 동네, 클로이츠베르크

작업실 앞으로 마중나온 클레멘스

 

 

 

그날의 분위기

오랜 비행 끝에 도착한 베를린은 그 특유의 분위기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낡은 건물과 지저분한 골목은 유럽 도시들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곳에선 베를린만의 매력을 부각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굳이 하나의 색채로 물들고 싶지 않다는 듯, 서로 다른 문화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존하며 베를린 안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수수하지만 위엄있는 광장의 건축물과 장난기 넘치는 대학 캠퍼스, 그리고 시원스레 뻗어가는 아우토반 등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베를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자아내는 정제되지 않은 인상이 불편함이나 산만함으로 여겨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이러한 균형 안에서 발견되는 생동감 때문일 것이다.

 

그가 사는 크로이츠베르크 또한 베를린을 잘 나타내는 지역이기도 하다. 유독 짜고 뻣뻣한 음식과 톡 쏘는 맥주로만 기억되던 도시는 이제 아티스트를 만나는 흥미로운 공간으로, 그리고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예술작품의 일부로 다가온다. 낯선 도시로의 여정이란 언제나 설레는 것이지만, 베를린이 전해주는 독특한 분위기는 클레멘스의 스튜디오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 가볍게 만든다.

 

 

만남

포스터가 가득 붙어 있는 길목을 지나, 저 멀리 그의 스튜디오 언저리가 보일 즈음. 눈에 확 띄는 노란색의 모자가 먼저 시야에 잡혔다. 작업실 앞으로 우리를 마중 나온 클레멘스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따라 손님맞이를 위해 청소가 한창인 스튜디오로 들어선다. 작고 아담하지만, 고가 높아 채광이 좋은 작업 공간에서 클레멘스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멋쩍은 인사와 어수선한 소개의 시간도 잠시, 그가 건넨 커피 한 잔이 이내 우리를 차분하게 가다듬어 준다. 이내 편안한 분위기에서 클레멘스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대화

지난 작업들을 소개해주었다

 

 

도시를 이루는 건축물들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는 클레멘스. 서로 다른 것들이 자유롭게(혹은 무작위로) 교차되며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하는 그는 여행과 디제잉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작업실 곳곳엔 그가 좋아하는 LP판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LP가 모여 상자째로 보관되어 있기도 했다. 그의 영감을 북돋아 주는 음악은 한 켠에 놓인 저 음향기기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재생되겠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작업에 있어서 콜라주와 페인팅 등이 결합한 설치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이러한 관심사가 반영된 듯 하다.

 

 

영감을 북돋는 음향기기들

좋아하는 LP

 

 

그라피티, 페인팅, 설치

이렇게 다양한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클레멘스에게 선호하는 작업 도구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책상에 놓인 스프레이를 가리켰다. 그가 청소년이었던 시절 그라피티는 인생의 일부였고,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그라피티를 통해 표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를 통해 자연스레 진로를 그래픽디자인으로 잡았지만, 클라이언트를 위해 일해야 하는 디자이너란 일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클레멘스는 일반적인 디자인 작업 방향에서 그 자신을 위한 작업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거쳐 페인팅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됐고, 그가 원하는 페인팅을 하기 위해서 그것에 맞는 캔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캔버스를 만들다 보니 조각을 하게 되고, 그 결과물을 놓기 위한 설치 작업으로 이어지기까지. 연속의 연속, 예술이 예술을 낳는 셈이었다.

 

 

선호하는 작업 도구들

 

 

도시 속의 작품, 그리고 재료

클레멘스와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 그는 작품을 위해 도시에서 구한 재료들을 서로 결합하고, 연결하며, 채색할 뿐만 아니라 이따금 차후의 작업을 위해 그것들을 다시 해체하기도 한단다. 지금까지 결합한 형태는 이미지로는 남아있지만, 결과물로서의 작품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시 해체되어 또 다른 과정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겠지. 어찌 보면 그의 창작활동은 24시간 멈추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로서 존재하는 듯했다. 때에 따라 다르다지만, 이후의 작품을 위해 언제든 분해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스튜디오에 있는 작품들 하나하나를 좀 더 오래 응시하게 된다. 아티스트 뒤편 벽에 걸려 대화 내내 우리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대형 설치미술품인 작품 하나도 인터뷰 다음날 내려질 거란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직접 마주한 클레멘스의 작품은 사진으로 접한 것보다 훨씬 압도적인 생동감을 발산했다. 도시의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만든 설치 작품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어딘지 조각품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덧대고 포개진 오브제들의 두께가 만들어내는 입체감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커다란 크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그의 작품들은 어디에서나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브제들의 종류도, 그것들이 결합하는 방식도 매번 다름에도, 서로 다른 오브제들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구성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그 도시를 바라보는 클레멘스의 시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도시를 이루는 다채로운 모양과 색깔은 한데 모여 마주칠 때 서로에게, 그리고 그것들이 놓인 상황과 환경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결합은 비록 일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뒤이어 올 새로운 가능성으로 반짝거린다.

 

 

한켠에 걸려있는 대형 설치미술품

 

 

그의 보물창고

클레멘스가 그의 창고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에, 일어서서 그의 뒤를 따라가 본다. 창고의 문을 열자 너무나도 다양한 개성을 가진 재료들이 차곡차곡 선반 위에 어지러이, 또 나름의 질서를 갖추고 쌓여 우리와 마주치고야 말았다. 클레멘스 베어는 작업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여러 도시에서 작품의 재료들을 모은다. 이러한 행위는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 도시가 품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 시간, 공간, 사람, 문화가 만들어낸 부산물들이 작업의 재료가 되기에. 그렇게 우연한, 어쩌면 필연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그의 작품이 완성되고, 작품의 전시가 끝나면 그는 작품을 부숴서 다시 돌려보낸다고 했다. 클레멘스는 자신의 작품이 영속성을 갖기보다는 그 순간에 속해있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실은 작품을 보관할 장소도 없고, 놔두더라도 유지보수가 힘들다고 웃으며 말했다.

 

 

창고

 

 

 

 

아티스트와 도시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클레멘스와 함께 동네 투어를 나섰다. 동네 곳곳을 걸으며 그의 작업 형태에 관해 대화를 더 나눌 수 있었다. 클레멘스는 작품의 밑바탕이 되는 전반적인 구상은 하더라도 사소한 어울림에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여러 조각 사이를 연결하고 재배치하여 수많은 가능성 중 한 가지를 구현해내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오브제들이 서로 잘 어울리게끔 각도를 조정하거나, 작품 설치에 가장 적합하도록 무게 중심을 바꾸는 등의 실용적인 고민이 작품의 완성을 이끄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한다. 자연스럽게, 클레멘스의 대화와 작품에서 우리는 작은 베를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사한 색채로 물들기를 거부한 채 독특한 입체감을 자랑하는 작품들로부터 우리는 베를린에 도착하면서부터 느꼈던 독특한 생동감을 또 한 번 경험한다.

 

 

클레멘스와 함께한 동네 투어

 

 

동네를 거닐다 한 바버샵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친구가 운영하는 바버샵이라고 했다. 그와 꽤 친분이 깊은지, 우리와 인사를 나누고 흔쾌히 사진을 찍는 데 동의한 그의 친구 뒤로 또 하나의 설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역시나, 그의 작품인 듯했다. 마치 도시가 계획에 의해 성장하고 분할되듯, 클레멘스의 작품은 생동감을 이루며 모였다가도 필요에 의해 흩어지고, 어느덧 또 다른 모습으로 재조립된다.

 

 

바버샵을 운영중인 그의 친구

 

 

그가 단골이라고 소개한 케밥 집 안, 벽의 타일에서도 독특한 문양을 발견했다. 이 문양도 하나의 도시를 이루는 분위기가 되겠지. 그래서일까. 우리가 만난 그의 작품들은 그것들이 놓인 도시를 닮았다. 각각의 도시에서 수집된 재료가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재료들이 스스로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닌 채 하나의 작품으로 모아지는 모양새는 이질적인 사람과 문화, 환경과 분위기가 균형을 이루는 도시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회와 문화 역시 모이고 흩어지기를 무수히 반복하며 번잡한 도시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그의 단골 케밥집에서 발견한 독특한 문양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의 인생 역시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는 과정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듯이.

 

누구나 책과 영화를 즐기는 시대지만 그림은 여전히 멀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이때 창작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고서 작품을 접한다면,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로만 접할 때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핀즐은 그런 관점에서 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를 직접 찾아가 라이프스타일을 취재하고 이를 영상과 매거진으로 기록하며, 선정한 작품을 대형 아트웍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분야라 생각해서 혹은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쉽게 즐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미술을 더 가까이 선물하고픈 마음까지 담았습니다.

 

클레멘스 베어의 작품 <Acores Marina Mauer Revisited>는 오직 핀즐의 독자들을 위해 새롭게 창작된 콜라주입니다. 제목에 담긴 Açores(아소르스 제도)는 포르투갈령 섬으로 제목을 번역하면 ‘다시 찾은 아소르스 선착장’이 됩니다. ‘다시’ 찾았다는 점에서 섬에 대한 애착 혹은 미련을 엿볼 수 있는데요. 작가가 사진을 불가능한 구조로 변형하고 의도적으로 뒤틀리게 스캔하여 만들어낸 이 콜라주는 황량하며 미지의 느낌을 첫인상으로 주지만 공간을 재구성함으로써 이곳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만듭니다.

 

 

클레멘스 베어의 ‘Acores Marina Mauer Revisited’

 

 

 

빛바랜 색은 쓸쓸함을 자아내고 중앙에 외로이 서 있는 벽은 고독을 더욱 심화시키죠. 해체된 서로 다른 조각들이 위화감을 주기도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이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리려 합니다. 하지만 여유를 갖고 바라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형태를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의 질서와 균형을 찾아 나가는 겁니다. 변형된 공간을 인식하면서 점차 처음에 느꼈던 쓸쓸함과 이질감의 정서보다 건물과 공간에 대한 탐구심이 일게 됩니다. 우리가 평소와 다르게 공간을 인식할 수 있게 말이죠.

 

도시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고단하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마주침들이 하나하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빛날 수 있을 때, 마치 클레멘스의 작품이 그러하듯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당장에 예술이 될 수는 없겠지만 완성될 작품을 기대하며 소소한 물건들을 찾아다니는 클레멘스의 시선을 가져볼 만한 이유입니다. 베를린을 닮은 클레멘스의 작품과 그것이 지닌 생동감에 대한 경험이 이를 읽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길 바라봅니다.

 

지난 11개월간 ‘아티스트가 머무는 공간’을 읽어주신 독자분들, 그리고 핀즐의 콘텐츠에 다시 한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ONDA, 매거진 ON과 소모라 매니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핀즐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아티스트의 삶과 그들의 공간이, 더 나은 숙박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작으나마 영감으로 작용하였기를 바랍니다.

 

 

 

[연재목차]

(도쿄 편)
2018. 08 소박한 가정집, 반나이 타쿠
2018. 09 가장 일본다운 다다미, 마치야마 코타로
2018. 10 거장의 작업실, 키우치 타츠로

(파리 편)
2018. 11 사랑을 담은, 세브린 아수
2018. 12 아늑한 보금자리, 뱅상 마에
2019. 01 딸과 함께 만든 놀이터, 톰 오구마
2019. 02 힙 & 트렌디, 아카트레 스튜디오

(베를린 편)
2019. 03 영감의 원천 베타니엔 미술관, 미켈라 피키
2019. 04 담배연기 자욱한, 기욤 카시마
2019. 05 베를린예술대학교, 카르멘 레이나
2019. 06 조형과 여백, 클레멘스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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