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 : 독립게임 에세이 - 공간을 채우는 예술, 게임 05

2019-05-04

05. 특별편 : 빅게임 <Brandnew>

Writer 아거게임즈 안민우 대표

Editor ONDA 소모라 매니저


 

안녕하세요! 아거게임즈 대표 안민우입니다. 이번 5월호에는 조금 독특한 글감을 들고 왔어요. 혹시 여러분은 ‘Big Game(빅게임)’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저는 원래 사람이 모이는 게 좋아 보드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다가 이를 확장해 다른 기획자들과도 협업할 기회가 생겨,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모이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이번 화에서 다룰, ‘빅게임’이라는 신생 게임 장르죠. 그럼 이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빅게임의 특징

우선, 빅게임이라는 장르의 정의는 바로 ‘다수가 실제로 모여서 즐기는, 테마성이 강한 실시간 게임 장르(분야)’입니다. 빅게임 자체가 신생 게임 장르인 만큼 누가 얘기하느냐에 따라 이 정의가 다소 바뀔 수는 있겠지만, 대개 과거 TV 방송 ‘더 지니어스’에 나왔던 부류의 게임을 빅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시기 편하실 거예요.

 

제가 지향하는 빅게임의 방향을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단독 장소를 대관해서 20명 이상의 인원이 2시간 정도 진행하는 게임형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종이와 펜을 사용하는 방식이 아닌, 각자의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다른 빅게임보다 훨씬 더 타인과의 협업에 집중하게 합니다. 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참가자들은 점수 계산, 손 패 정리, 포인트 관리, 교환, 거래 등을 할 수 있으니, 결국 자잘한 귀찮음을 기술로서 해소해주는 것이죠.

 

단, 이때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에게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이외에도 반드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물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전자 지갑 역할을 수행할 NFC 카드라던가, 게임상의 신분 카드나 포인트 카드를 태그할 수 있는 중립 구조물 등이 이에 해당되죠. 완벽한 기술을 지향해 모든 것을 스마트폰에서 끝내려고 하면, 기술로 간소화되는 절차만큼 관계또한 간소화된다는 것을 여러 번의 테스트를 하고 난 뒤 깨달았습니다.

일례로, 아무런 게임 구성물 없이 스마트폰으로만 빅게임을 진행한다면 소통이 많아지기보다는 모두 벽에 등을 대고 어플만 쳐다보며 서로 눈치를 보게 됩니다. 모바일 게임을 ‘굳이’ 만나서 하는 셈이 되는거죠.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획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중요한 부분이 바로 게임상의 편의와 ‘꼭 필요한 불편함’ 간의 중도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빅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독보적인 지략과 빠른 게임 이해력 못지 않게 높은 사회성과 상호간의 협업도 중요합니다. 최근 스타트업 및 취미 공유 문화가 확산하며 대중화된 트렌드, “네트워킹 행사”를 게임으로 즐긴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빅게임의 방향성과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진행자가 전반적인 게임의 분위기를 리드해야 하고, 이를 위해 빔프로젝터와 음향 장비가 필수임은 물론 공간은 구획이 많이 나뉘어 있을수록 좋죠.

 

이러한 빅게임을 통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 수십 명과도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이든 학교든 ‘조직’이 있는 곳이라면 특히요. 저 또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데 큰 행복을 느끼는 만큼, 빅게임이 “소통”이라는 것을 즐기는 놀이 문화로 정착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수의 지배 – Minority Rules

그렇게 제가 만들어본 첫 게임은 바로 ‘소수의 지배 – Minority Rules’라는 게임입니다. ‘소수의 지배’는 말 그대로 투표 후 내가 소수표에 속한다면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승리를 위해 서로 소수표가 되려는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죠. 지난번 이 빅게임을 실제 행사로 개최했었는데요. 저와 함께 일하는 공동 작업팀의 구성원들이 이미 게임 방식을 거의 완성했었고, 저는 전반적인 행사의 디렉팅을 도왔습니다. 저 또한 ‘소수의 지배’를 통해 빅게임을 처음 진행해보는 만큼 생경하고 유쾌한 경험을 했죠.

 

아직 이 빅게임은 전체적인 골격만 있는 상태라, 구체적으로 테마를 입히지는 않았지만 아마 ‘정치’라는 관념을 다루지 않을까 합니다. 기획자가 게임 규칙을 그대로 활용해 게임 이름을 정말 직관적으로 지었다는데요, 실제로 이와 유사한 정치 이론이 있더라고요. 독일의 사회학자인 미헬스가 제창한 말로, 정치권력을 실제로 장악하는 것은 언제나 소수의 인간이라는 ‘소수 지배의 법칙’ 이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희 게임에서도 역시 점수를 얻는 쪽은 소수표이기 때문에, 정치 테마가 정말 딱 들어맞는 것 같네요.

 

아래 사진은 가장 최근의 ‘소수의 지배’ 시연 사진입니다. 내부 테스터가 아닌, 베타 테스터를 모집했죠. 소수의 지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이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약 스무 명이 좀 넘는 테스터를 모집해 시연을 진행했습니다.

 

 

투표 후 내가 소수표에 속한다면 점수를 획득하는 게임, ‘소수의 지배’ 시연 사진

 

 

당시 ‘소수의 지배’ 게임 규칙의 큰 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플레이어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통해 게임 서버에 로그인한다.

2. 게임은 총 6라운드로 진행되며, 각 라운드가 시작되면 10분간 자유로운 교류와 함께 본인의 ‘의견카드’를 제출할 수 있다.

3. 의견카드는 ‘진보, 보수, 중도’의 세 분류로 구성되며 각각 3장, 3장, 1장을 소지하고 시작한다.

4. 의견 카드를 제출할 때는 총 4개로 나뉜 구역 중 한 곳을 정해 제출할 수 있으며, 라운드 제한 시간이 지나면 제출할 수 없다.

5. 라운드가 종료되면, 의견 카드 제출 결과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된다. 해당 구역에서 본인이 소수 의견 제출자일 때, 해당 구역의 모든 참가자 수만큼 점수를 얻는다.

 

게임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통해 위와 같은 진행 순서에 따라 진행합니다.

실제 안건별, 4개로 나뉜 구역은 이렇게 투표함처럼 표시되죠.

 

 

실제 안건별로 투표함처럼 표시되는 화면

 

 

이렇듯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투표와 정산의 과정을 간소화해주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이 시간을 아껴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협상하거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라운드가 종료될 때마다 진행자는 중앙에 있는 빔프로젝터로 상황판을 띄우고, 이전 라운드의 정보를 제공하여 플레이어의 판단을 돕습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진행되는 ‘소수의 지배’

 

 

 

그럼 플레이어가 노릴 수 있는 기본적인 고득점 전략은, 타 플레이어의 동향을 수집하여 이번 라운드에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릴 것 같은 구역에 소수 패로 투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0명이 넘는 플레이어의 동향을 전부 수집해서 독단적으로 치고나가는 것은 상당히 어렵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득점을 도와줄 다수 패가 되지 않으려면, 일부 플레이어와 연합을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연합을 구성한 후엔 연합 내 남은 의견 카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각각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역할 분담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 동안 플레이어는 거짓 정보를 타 연합에 흘리기도 하고, 연합에 속하지 않은 개개인에게 접근하여 회유하기도 하죠. 저는 사실 이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한 공동작업 팀 전원은, 이렇게 다양한 전략에 따른 기록(Log)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규칙 상의 변화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어떤 선택지가 더 강화되었는지를 볼 수도 있고, 그에 따른 결과도 대조할 수 있죠.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빅게임의 재미와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을 더하는 기틀이 됩니다. 빅게임 제작팀이 이를 바탕으로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규칙 상의 변화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어떤 선택지가 더 강화되었는 지를 볼 수도 있고, 그에 따른 결과도 대조할 수 있는 ‘기록(Log)’

 

그렇게 참가자나 제작자 모두 열기를 가득 뿜어내던 2시간 동안의 게임이 끝나고 나면, 누가 나서서 진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결과를 놓고 서로의 선택지를 후술하는 뒷풀이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연합, 개인과도 편하게 이야기하며 친해지죠. 그것이 바로 소수의 지배뿐만이 아닌, 모든 빅게임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로써 빅게임은 보드게임처럼, 재미라는 소재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게임의 결과를 놓고 서로의 선택지를 후술하는 뒷풀이 시간

 

 

 

Fine.

이렇듯 오늘은 새롭고 흥미로운 소재를 다뤄봤습니다. 바로 ‘빅게임’이라는 게임 문화와 공동 작업으로 일궈낸 첫 라인업을요. 다음 회차에는 다시 익숙한 보드게임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인용 게임을 넘어서, 서너 명이 즐길 수 있는 여러 보드게임의 첫 리스트를 준비할 계획입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사가 많은 5월, 가까운 사람들과 재밌는 게임을 즐기며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연재목차]

2019.01 소개 紹介
2019.02 두 명 : 추상전략
2019.03 두 명 : 심리전
2019.04 두 명 : 카드
2019.05 특별편 : 빅게임
2019.06 서너 명 : 배치
2019.07 서너 명 : 추론
2019.08 서너 명 : 카드
2019.09 여러 명 : 블러핑
2019.10 여러 명 : 협상
2019.11 여러 명 : 마피아
2019.12 소회 所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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