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PECIAL : 아티스트가 머무는 공간 10

2019-05-02

10. 베를린예술대학교, 카르멘 레이나

Original Author 핀즐 진준화 대표(www.pinzle.net)

Adapter&Editor ONDA 소모라 매니저

먼슬리 아트웍 핀즐
웹사이트 :
www.pinzle.net

핀즐은 국내 유일의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로,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와 작품을 선정하여 세상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삶과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공간을 일구어 가는 많은 분들께 영감을 드리고자 본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연재하는 내용 및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관련 문의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핀즐’로 주시면 신속하게 응답하겠습니다.

 

Busy Hands

 

 

존재 자체만으로도 묘한 환상을 갖게 하는 공간이 있다. 때로는 사색에 잠기게 하고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곳. 공방, 아틀리에, 스튜디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 바로 예술가의 공간. 그곳에서라면 왠지 시간도 느리게 흐를 것만 같고 사소한 순간조차 영감이 될 것 같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간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소개할 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하고 단정 짓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흰색인가 싶다가도 푸른색 같고, 빨간색인가 싶으면 초록색인 사람들처럼. 카르멘 레이나는 바로 그런 아티스트이다. 아직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공부 중인 학생이지만, 작품에 무엇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지금껏 소개한 아티스트들 못지않는 전문가답다.

 

베를린을 절대 잠들지 않는 놀라운 도시라 생각한 카르멘 레이나는 2011년, 이 강렬한 도시를 경험하기 위해 이주했고 이는 곧 그녀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익숙한 분야에 머무르기보다 그래픽 디자인이며 건축, 페인팅, 현대미술, 워크숍 및 전시회, 각종 댄스에 이르기까지 늘 새롭고 분야에 도전할 만큼 열정적이기도 한 그녀. 언제나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이곳엔 새로운 에너지와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믿은 카르멘을 따라 베를린 예술 대학으로 발길을 향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입구

교내 힙한 포스터가 가득하다

 

 

베를린 예술대학, 카르멘을 만나다.

카르멘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베를린 예술대학은 그 입구부터 왠지 장엄한 느낌을 풍겼다. 낮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아치형의 문틀, 그리고 그 아래 화려하고 반듯한 문양이 그려진 유리와 나무문.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주듯, 왠지 손때 뭍은 정겨움이 느껴진 탓에 내부 모습도 이와 같이 고풍스럽고 옛 모습을 많이 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막상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자, 그 예상과 달리 힙한 포스터가 빽빽이 붙여진 새하얀 벽과 천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떤 색으로든 물들 수 있는 새하얀 바탕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 무한함으로 마주한 이를 주눅 들게도 하는 법. 카르멘은 이 수많은 가능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성큼성큼 자신의 작업실로 안내하는 카르멘을 따라 들어가 예술과 작업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레이나가 준비해둔 작업실

그녀의 작업들

 

 

 

그녀의 작업실 내부도 역시 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위에 그녀의 작업물이 가지런히 정렬하고 있었는데, 독특한 컬러의 스케치와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형광 주황색과 녹색의 배경에, 손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진 일러스트. 그녀는 ‘손’이 항상 예술가들을 매료시키는 대상이라 말하며, 이 손을 통해 각각의 혹은 전체의 작업과 활동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듯 원전공은 그래픽 디자인이지만, 한 편으로는 건축가이기도 한 카르멘은 항상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그래픽 디자인에 접근하려 한다. 그녀의 지도교수인 Fons Hickmann은 그녀가 주로 공간, 도시, 재료 등에 대해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으며, 보다 나은 그래픽 방식을 위해 익숙한 장소를 떠나보려 애쓴다고 말했다.

 

 

유쾌한 에너지를 가진 아티스트

 

 

 

새로운 매체를 통한 실험과 표현들에 언제나 흥미를 느낀다는 카르멘. 건축, 그래픽 디자인, 댄스, 페인팅 등 다양한 시도들을 오가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스윙 댄스가 쉽게 떠오른다. 그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르멘은 그 안에서 고유한 리듬을 느끼며 성장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스윙 댄스를 즐기기 위해 어색한 몸동작과 실수를 반복하는 것처럼, 그녀는 아티스트로서의 리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유롭게 흔들리며 새로운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swing, swing, swing

그녀는 유쾌한 에너지를 가진 아티스트였다. 자신의 작업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카르멘의 손과 발, 표정은 쉼 없이 움직인다. 그녀의 주위가 부단한 움직임으로 가득 차버린 나머지 더는 빈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묘사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미소 짓기도 하고 손짓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다. 인터뷰 장소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티스트로서의 자신을 설명하는 카르멘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듯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흔들거리는 듯했다.

 

한참동안 그녀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시선이 작업실 한 켠에서 잠시 멈췄다. 단순한 모습의 개수대가 함께한 식탁 위에는, 잘 정리된 주방용품과 컵, 커피 포트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아티스트의 공간을 소개하기 전, 카르멘을 선정할 때 그녀가 가진 학생이란 신분은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작가로서 인지도나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그녀가 자신만의 목소리가 작품에 담길 만큼 성숙함이 있을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얀 색의 덩어리 속 조그맣게 놓인 파란 담쟁이 식물 속엔 열정적인 카르멘의 이면에 진지하고 차분한, 늘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이 엿보였다.

 

 

그녀의 작품들

잘 정리된 작업실의 한켠

 

 

 

판화 작업실

그녀를 따라 다른 작업실인 판화실로 향하는 길. 입구에 비스듬히 세워진 판화 작품들과 그 작품에 눌린 옷, 색색깔로 물들어 옷걸에 걸려 있는 작업복은 이 공간에서 그들이 얼마나 예술가의 열정을 표출하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베를린 예술 대학이 카르멘의 고유한 목소리를 찾는 실험에 적합한 공간과 시간을 갖게 해주었다는데, 이 판화실이 하나의 그 공간이지는 않았을까.

 

 

판화실의 입구

 

 

그녀는 판화실을 담당하는 친구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의 지도교수인 Fons Hickmann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도록 자율권을 준다고 말하는 그녀와 친구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함께 묻어 나왔다.

 

 

판화실을 담당하는 친구를 소개시켜 주었다

건조중인 판화 작업물

 

 

판화 작업실은 그녀의 작업실과 달리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이 묻어났다. 어지러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보면 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한 물품들. 이에 더해 판화 작업 시 필요한 거대한 판화 기기들과 이미 판화 작업이 완료되어 건조를 기다리는 작품이 쌓인 트레이가 질서를 지켜, 이 친근하고도 복잡한 느낌에 한몫한 듯하다. 이미 작업이 완료된 판화물이 걸려 있는 벽면 역시, 다양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녀답게 모두 제각각의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다.

 

 

다양한 판화물이 걸려있다

 

 

 

실수

작업실을 나와 그녀와 베를린 예술대학 교내를 투어하며, 그녀가 가진 생각에 대해 더 차분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실수’에 대한 고찰을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그녀에게 실수란, 하나의 강력한 도구이다. 성공의 순간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만, 언제나 실수가 누군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는 점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우게 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도록 하여 나를 더 나은 행동으로 이끌 것이라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가 느껴졌다. 아직 성장하는 학생이기에, 그녀의 생각과 고민을 자유롭게 말하고, 두려움 없이 밝힐 수 있는 것이겠지. 타협과 겸손이 미덕이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현재의 나 자신과 비교했을 때, 과연 누가 더 성숙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와 함께한 교내 투어

 

 

 

스윙 댄스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카르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발걸음을 돌리던 그 때, 그녀가 우리를 건물 한 곳을 인도했다. 그녀가 스윙댄스를 춤추는 연습실이었다. 춤추기 이전의 삶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춤과 스윙댄스를 사랑하는 그녀는 그 곳에서 애정과 즐거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음악에 맞춰 스윙 댄스를 선보였다. 그녀는 전통적인 재즈 댄스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과거의 어떤 지점과 자신을 연결해 준다고 설명했다. 카르멘에게 스윙 댄스는 가장 큰 열정이자,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매개체겠지. 스윙 댄스를 즐기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어느 재즈 음악의 리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Do you read her?

가까이에서 지켜본 카르멘은 베를린 예술 대학의 학생으로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아티스트이자 스윙 댄스를 즐기는 안무가이다. 경력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고 새로운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흥미에 기꺼이 열정을 쏟는 사람이다. 하지만 삶과 예술에 대한 그녀의 태도로 관점을 넓혀보면 또 다른 카르멘을 ‘읽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방면으로 시도된 그녀의 예술 활동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매체나 표현방식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카르멘은 각각의 시도들을 아티스트로서의 고유한 리듬을 찾아가며 내딛는 새로운 걸음(step)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작은 성공과 실수들을 반복하며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스윙 댄스처럼, 다양한 경험들을 재료 삼아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그것이 주는 영감을 고유한 리듬에 맞춰 예술작품으로 자아내는 것이 그녀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평가하기보다 그것들에 대한 카르멘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이 탐방이, 그녀가 만들어내는 흐름과 운율을 더욱 잘 읽어내기 위한 방편이 되길 기대해본다.

 

 

스윙댄스를 사랑하는 그녀

 

 

 

누구나 책과 영화를 즐기는 시대지만 그림은 여전히 멀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이때 창작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고서 작품을 접한다면,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로만 접할 때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핀즐은 그런 관점에서 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를 직접 찾아가 라이프스타일을 취재하고 이를 영상과 매거진으로 기록하며, 선정한 작품을 대형 아트웍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분야라 생각해서 혹은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쉽게 즐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미술을 더 가까이 선물하고픈 마음까지 담았습니다.

 

 

카르멘 레이나의 ‘Busy Hands’

 

 

카르멘 레이나의 일러스트레이션 <Busy Hands>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적힌 HOME이라는 네 글자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집은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주인의 취향과 개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가장 뛰어난 표현 수단이 되기도 하죠. 마치 손동작을 통해 감정의 미묘한 변화에서부터 하나의 언어, 때로는 그 사람 자체까지도 표현해내는 손처럼요. 어쩌면 이 작품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카르멘의 자세를 오롯이 담은 작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모든 꽃이 저마다의 향기를 품고 있듯,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하나씩 품고 있는 우리들.

그걸 가장 잘 표현해 낼 여러분만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연재목차]

(도쿄 편)
2018. 08 소박한 가정집, 반나이 타쿠
2018. 09 가장 일본다운 다다미, 마치야마 코타로
2018. 10 거장의 작업실, 키우치 타츠로

(파리 편)
2018. 11 사랑을 담은, 세브린 아수
2018. 12 아늑한 보금자리, 뱅상 마에
2019. 01 딸과 함께 만든 놀이터, 톰 오구마
2019. 02 힙 & 트렌디, 아카트레 스튜디오

(베를린 편)
2019. 03 영감의 원천 베타니엔 미술관, 미켈라 피키
2019. 04 담배연기 자욱한, 기욤 카시마
2019. 05 베를린예술대학교, 카르멘 레이나
2019. 06 조형과 여백, 클레멘스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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