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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하회탈 - 하찮은 회사원의 탈출기 02

2019-02-03

글 서울달빛 게스트하우스 운영자 정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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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눈 뜨다

– 회사는 내 운명을 책임져주지 않는 사실을 깨닫다

 

Photo by Júnior Ferreira on Unsplash

 

한 때는 나도 회사를 사랑했다.

 

사업이 안정적이면서도 급여와 대우도 좋은 회사. 거기다 좋은 사내문화까지 갖춘 기업.

 

뭇 취준생들이 꿈꿨고, 나 또한 취업을 준비하면서 꿈꾸었고,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이 회사의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인생 최고의 성취인 듯 기뻤고, 입사 초기에는 내 손으로 돈을 버는 기쁨과 든든한 회사에 대한 소속감에 한껏 들떴다.

 

지금 돌아보아도, 회사원으로서 살았던 만 3년간의 경험은 나 자신의 내/외적인 유익한 성장을 하도록 해준 시간이었다. 회사의 수많은 부서를 보면서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기 위해 어떤 기능들이_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부터 마케팅과 영업, 백오피스의 인사와 회계, 세무, 총무까지_필요한지 배웠다. 소소하게는 MS오피스와 문서 툴을 다루는 법부터 나와 다른 성격과 역량을 가진 타인과 협업하는 법, 거래처와 만나 의사소통하는 법, 그리고 대한민국 회식 문화까지!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잠시, 나의 입사 전까지 연이어 호(好)실적을 달성하던 회사는 내가 입사한 바로 그해 여름부터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외부 환경은 급격히 악화하였고, 여러 지표가 암울하게 나타났다. 회사 사람들은 회사의 기반 사업이 흔들린 것은 아니라며 서로 위로했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숫자는 비정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입사한 첫해인 2014년 연말, 회사는 거짓말처럼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5월의 봄, 회사는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회사는 회사로서 마땅한 일을 했다. 수년간 안정적이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정체되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잔가지를 잘라내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회사는 구조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의 그 결정이 일면 이해되기도 했다.

 

다만 잘라내고 털어내는 사람도, 잘리고 털리는 사람도 모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동료들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정리해고 (출처 : 한겨레)

 

 

희망퇴직. 그 이름만 들으면, 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이 희망퇴직의 시기에 타이밍을 잡아 이직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회사원에게 현실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공공연히 공지되지는 않았지만 사내에서는 자발적인 퇴직이 아닌, 희망퇴직의 대상이 지목되었고, 그들은 비밀스럽게 메시지를 받았다. 조용히 한 사람씩 퇴직 면담을 받으러 가는 것을 보며 침묵의 아비규환이 사무실을 점령했다. 겉으로는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다음은 내가 아닐까’라는 공포 때문에.

 

그렇게 한 달여 만에 10명 중 한 명꼴로 사람이 줄었다. 50대의 부장님부터 30대 초반의 대리까지도 자리를 비웠다. 그들이 짐을 싸는 것을 보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남은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였다.

 

살아남은 너와 나를 위해, 아니 나를 살려 남겨준 회사를 위해 건배.

 

결국 운이 좋아 살아 남겨졌기에, 사무실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퇴직 대상이 된 사람들이 일을 잘 못 했을까?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을까? 혹은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그런 경우도 물론 있었겠지만, 다수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으로 인해 지목되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던 직무와 소속 때문에, 실적이 아닌 상사와의 관계가 크게 좌우하는 평가 때문에, 한정된 TO로 인해 승진에서 밀렸기 때문에,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직장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아직 초년 차라서, 아직은 운이 좋지 않은 일을 겪지 않아서, 살아 남겨졌다.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할 터전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의 운명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혹은 믿고 싶었지만),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내 운명에 대해 아무것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마저 느꼈다.

 

“내가 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무언가, 방법을 만들어야겠다.”

 

이때부터 하찮은 회사원은 회사 밖으로의 탈출을 꿈꿨다.

 

이직은 답이 아니었다. 다른 어떤 직장을 가더라도 피고용자로서의 내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고로, 타의에 의해 내 생사가 결정되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다.
고시나 자격시험은 체질과 맞지 않았다. 짧아도 1~2년, 길면 수년간을 책상 앞에 앉아 단 하루의 시험날을 위해 일상을 포기하고 공부하는 것은 내 적성과 부합하지 않았고, 전혀 학업에도 관심이 없었다.

 


내 사업을 하고 싶다.

일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거나,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라거나, 어떤 거창하고 원대한 포부를 품어서가 아니다. 그저 내 손으로 내 생존을 책임지고 싶었다. 거대한 회사의 손에 내 운명을 의탁하지 않고 내 손, 내 생각과 행동에 의해 스스로 살아남거나 혹은 몰락하고 싶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생각에 다다르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무슨 사업을 해야 할까? 아니, 사업이란 건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나는 어릴 적부터 사회의 거대한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학창시절에는 교과과정대로 공부하고, 정해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잘 받아 괜찮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교에서는 각종 활동기록을 모아 스펙을 쌓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마 그대로 그런 삶을 계속했다면 적당한 때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융자를 내어 집을 장만하고. 그렇게 살았겠지.

 

하지만 사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이 일이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업은 출발하는 곳도, 가는 길도, 방법도 모두 내가 정한다. 사업을 구상하는 것은 누군가의 말마따나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았다.

 

학생 때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근거를 찾아 글을 작성하던 습관과는 멀어져야만 했고, 혹은 회사원으로서 크고 작은 주제를 잡은 뒤 사실과 데이터를 조합해 상사의 의견을 여쭙는 품의, 보고, 결재의 과정과도 전혀 달랐다.


오솔길조차 없는 허허벌판에 떨어져, 심지어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걸어 나아가야 하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호젓하게 내 생존과 몰락은 내 손으로 책임지겠다고 한 주제에, 정작 뭘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는 막막한 아이러니. 내 사업은 그 모호함과 두려움의 한복판에서 출발했다.

 

나는 무엇을 팔 것인가? 누구에게 팔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가격은, 밸류는, 차별화는, 브랜드는?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그려야 하지?

 

아니, 모든 걸 제쳐 두자.

일단 가장 단순한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연재목차]

2019.01 프롤로그
2019.02 눈 뜨다
2019.03 공상하다
2019.04 관찰하다
2019.05 구상하다
2019.06 만남
2019.07 설레다
2019.08 숨 고르기
2019.09 계산
2019.10 헤매다
2019.11 첫삽 뜨기
2019.12 만들어지다
2020.01 그랜드오픈
2020.02 에필로그 – 퇴사 과정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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