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 : 게스트하우스를 헌다고? 01

2018-08-03

01. 1% 호스텔의 시작

글 (유)일퍼센트그룹 김지환 부대표
Photo by Steinar Engeland on Unsplash.jpg


전주 1% 호스텔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길 12-14
객실타입 : 도미토리, 더블룸, 패밀리룸
부대시설 : 카페, 주차장, 공용라운지, 세탁실, 공용부엌
주변 관광지 : 전주한옥마을, 오목대, 전동성당, 남부시장, 경기전, 풍남문, 향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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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01_사회적기업

“사회적 목적을 우선으로 추구하면서 재화·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기업”,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의이다. 나는 사회적 기업보다 영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다

2015년 7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기염을 토했다. 나 또한 이상과 현실 가운데 이상을 토해내는 일이 있었다. 가치 지향적인 일을 좇다 보니 사회적 기업에 발을 들였지만, 그 끝은 ‘번 아웃’으로 고집하던 이상을 뱉어내고 자리를 떠났다. 2015년 8월 말, 뜨거움이 잦아들기를 바라며 훌쩍 떠난 곳이 보라카이였다. 열악한 숙소에 비해 아름다운 바다와 친근한 현지인들 덕분에 많은 휴식을 즐겼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힘을 얻었다.

이미지02_보라카이

보라카이

 

대학 시절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지만,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할애했다. 졸업 전 이른 사회 경험을 통해 ‘밥 먹고 살긴 틀렸구나.’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 틈에 늘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옅은 강박감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삶을 연명하려는 방편임과 동시에 이상을 실현하는 공통분모를 찾았고, 그 결과 ‘교육 코칭, 비영리 청년 활동, 사회적 기업을 목표로 한 1인 창업, 아름다운 가게’를 거치며 청년 시절의 1/3을 보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경험과 자본이 필요했다. 현실 역시 돈이 필요했다. 보라카이를 다녀온 이후 삶의 지향점을 비영리에서 영리로 전환하기 위해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4년제보다 2년제인 커뮤니티 칼리지를 택했고, 학생 비자를 받기 위해 서류를 보내 놓은 상태였다. 지칠 때면 죽마고우(대나무로 만든 말을 함께 타진 않았지만)인 오래된 벗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곤 했다.

 

 

 

어느 날, “이건 우리가 해야겠다!”

친구의 이 한마디가 1% 호스텔의 시작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유학 준비를 하며 뜨겁게 달궈진 내 뇌 회로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고, 설득당한 계기는 따로 있지만 이는 비화로 남겨두겠다. 사실 개인적인 계산이 더 빨랐던 것 같다. 대출로 비자 준비, 항공권, 체류비, 학비까지 해결해가면서 2년간 타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인터내셔널 호스텔링을 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인 여행객들을 만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경영에 대한 경험과 돈을 벌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이었다.

나는 사회적 기업 창업을 목표로 경험을 쌓고 있었고 친구는 로스쿨과 정치 입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 각자 전문 기반을 닦아 10년 뒤 함께 의미 있는 도전을 해보자고 약속했었다. 다만, 호스텔을 계기로 그 시기와 방법이 바뀌었을 뿐이다.

2008년, 전주 한옥마을 붐이 일기 시작했고 2013년, 아직 전주에 게스트하우스와 호스텔이라는 개념이 미비할 때 친구의 형이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 ‘호스텔’을 시작했다. 초창기 굉장한 매출 호황을 누렸지만 오래지 않아 위기가 닥쳤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닥친 메르스, 이 두 사건이 관광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한국은 심각한 집단적 트라우마와 경제적 위축을 경험했다. 전주 한옥마을과 호스텔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게 친구 형의 ‘호스텔’도 운영을 접으려 했다.

이전 호스텔 모습

호스텔 1층 라운지는 술집을 겸했던 곳이었다.

 

 

호스텔과의 첫 만남

하지만 친구가 나섰고 2016년 8월 중순경, 친구와 친구 형 사이의 합의를 통해 호스텔 경영권을 먼저 인수하게 되었다. 실경영자가 친구로 바뀌었을 뿐 아직 사업자는 친구 형 명의 그대로였다. 친구가 대표를 맡고, 내가 부대표가 되어 차근차근 호스텔을 바꿔나가기로 합의했다.

아직도 1% 호스텔을 처음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호스텔 1층 라운지는 술집을 겸했던 곳이다. 인테리어 테마와 기본 톤이 검은색이었다. 대낮의 햇빛과 실내의 어두움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어깨가 ‘착’ 가라앉는 느낌과 함께 어지럽혀진 테이블과 의자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생겼다. 불을 들여 요리했던 흔적, 기름때와 탁한 냄새, 운영을 한참 안 한 듯한 먼지들이 굴러다니는 공간…‘어, 어, 이거 할 수 있을까?’라는 장애물 감지 적신호가 들어왔다.

다행히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친구와 장애물을 빨리 감지하고 방어태세를 잘 갖추는 내가 합쳐져 공수의 적절한 조합으로 얼마 안 된 시간을 잘 버틴 것 같다. 내 이야기가 경험의 시간보다 경험의 무게로 숙박업을 시작하려는 분들이나 하고 계신 분들에게 솔직 담백한 이야기로 전해졌으면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가 많이 담겼다.

 

 

 

왜 1%인가?

새롭게 호스텔을 단장하며 이름을 짓기로 했다. 호스텔에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담았으면 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상호와 가치를 지향하는 함축적 의미가 담긴 키워드들이 쏟아졌다. 그중 선택된 것이 “1%(일 퍼센트)”였다.

숫자 1(일)과 기호 %(퍼센트)를 함께 보면 바로 연상되는 것이 무엇인가? 시장 경제 체제 아래 돈과 권력을 가진 상위 소수 계급이 바로 떠오른다. 2011년도 월가 시위(주석1)를 기억하는가? 전 세계적인 시위의 흐름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1% 때문에 99%가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1%를 중심으로 뒤집어 생각해본다면? 1% 때문에 99%가 살기 좋은 세상이다. ‘1%인 사람들이 변하면, 99%도 함께 잘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라는 호스텔 명은 지역을 뿌리에 두고 좋은 1%를 만들어나가며, 그 1%를 서로 연결하고 나머지 99%와 함께 잘살자는 우리만의 숫자이자 기호였다.

현재 전라북도 전주는 젊은 세대들이 떠나는 도시 중 하나다. 많은 청년이 일자리, 생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태어나고 자란 지방을 떠나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우리는 1% 호스텔을 시작하며 이러한 문화를 바꿔보자고 결심했다. 우리가 먼저 지역에 남아 우리 자신의 생존을 지키고 나아가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세대가 떠나지 않고 지역경제의 주체가 되는, 그래서 지역의 선순환을 일으키는 일에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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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와 함께 해왔던 일

대학생 시절인 2010년부터 지금까지 햇수로 8년, 그리고 휴식기를 제외하면 약 6년간 다양한 강연회를 진행했다. 우리 지역(전북 전주) 출신이며 전국적으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 혹은 이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전북을 기반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시는 분을 초대해 그분들의 지식을 시민들과 나누는 강연회였다. 이 강연회를 이제 ‘1% 지식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호스텔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호스텔에 방문하는 고객들, 지역 주민들, 강연에 관심 있는 분들이 1% 지식 나눔에 참여하며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자연스럽게 좋은 생각들이 공유되었다. 또한 강연에 관심을 두고 이 지역을 찾아와 호스텔에 숙박하는 분들도 생겨나길 기대하고 있다. 호스텔 운영과 경제적 선순환,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우리에게 호스텔 운영의 가장 기초적인 목표는 생존이지만, 결국 이도 가치 지향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본 수단으로서의 사업체이다.

 

1% 지식나눔 포스터

1% 지식나눔 포스터

1% 지식나눔 포스터

1% 지식나눔 포스터

1% 지식나눔 현장

1% 지식나눔 현장

 

 

동료, 사람과 관계의 중요성

사업의 모든 부분에서, 그 시작은 사람이다. 호스텔을 운영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력 구성을 생각했다. 그 수가 4명이었다. 대부분 대표인 친구의 관계 안에서 적절한 사람들을 찾고, 설득을 통해 그들을 리쿠르팅했다.

먼저 숙박업의 가장 기초이면서도 중요한 청결을 유지할 [청소영역]의 실장님은 이미 내정이 되어있었다. 친구 부모님의 아파트 청소 및 개인의뢰를 받아 20년간 청소를 해오신 분이었다.

실장님은 프로정신을 가지고 있으셨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면 이 분이 청소를 하고 간 곳은 새 것이 되었다. 남들이 하루 일당을 기본 최저로 받으실 때, 이의 30% 이상을 추가로 받으셨다. 하지만 비싼 금액에도 불구하고 실장님의 청소 맛을 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청소를 의뢰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아주머니이자 그 친화력으로 고객들과의 신망이 두터웠다. 또한 에너지도 많으신 분이었다.

이 분은 현재 우리 회사 내 최고 연봉자이기도 하다. 호스텔을 시작할 때 친구와 약속이 하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시는 실장님께 대표, 부대표, 그리고 앞으로의 직원들을 통틀어 최고의 연봉을 드리자고 약속했다. 지난 인터뷰 때도 말했지만 청결은 숙소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돈 가는데 사람 마음도 가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가 어디에 담겼는지를 정확히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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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라운지를 편한 휴게 공간으로만 사용할 수도 있지만, 수익 창출의 도구로도 활용해야 했다.

이를 창출할만한 가장 쉬운 접근이 카페였다. 바리스타 자격증, 영어 구사, 미술 전공, 미모를 겸비한 대표의 전 직장동료 한 분을 카페 책임으로 모셨다.

그리고 대표의 일을 분담하고 서브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였고 그 외 시트 교체, 청소, 프런트 업무, 서류 업무, 기획 등의 일을 멀티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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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로 시작하는 일에 염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당연한 생각이었고 실제 그 염려가 갈등과 헤어짐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고, 실행하지 않고, 과정을 밟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함께 할 든든한 동지를 구하는 일과 사업의 성공을 위해 거쳐야 하는 것. 그 처음도 사람이고 마지막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호스텔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시작을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첫 챕터를 갈음하고자 한다. 다음에는 좀 더 상세하게 호스텔의 내적, 외적 변화와 시행착오들에 대해 나눌 것이다. 이것은 호스텔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를 ‘매거진 ON’ 독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기쁘다.

 

(주석 : Occupy Wall Street – 월가를 점령하라 : 2011년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대규모 군중시위. 이후 시위는 보스턴,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수도 워싱턴 D.C. 등 미국의 주요 도시로 번져나가며 점차 그 규모가 커졌다.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럽과 아시아 등 82개국ㆍ900여 개 도시에서 유사한 형태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1% 대 99%’라는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공감과 분노가 전 세계적 현상임을 반영했다. 이 월가 시위의 핵심은 ‘최고 부자 1%에 저항하는 99% 미국인의 처지를 대변한다.’는 구호에 있다. 시위대의 직접적인 불만은 빈부격차로, 1 대 99라는 자극적인 구도가 등장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상대적 박탈감에 기반한다.)

 

 

[연재목차]

2018.08 1% 호스텔의 시작

2018.09 1% 호스텔을 만들어가다

2018. 10 1% 호스텔의 완성

 

 

1%호스텔 광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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